민사2012가합10852광주지방법원 1심2013-11-01 선고검수완료

원고들이 1944년 만 13~14세에 근로정신대에 지원해 일본 미쓰비시 공장에서 임금 없이 강제노동을 하고 상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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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요약

광주지방법원 제12민사부 2012가합10852 민사 사건(2013년 11월 1일 선고, 1심)의 판결 결과는 원고 일부 승소이다. 적용 법조는 민법 제750조, 민법 제390조, 민법 제416조 외 14개이다.

원문: 국가법령정보센터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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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사건 개요

무슨 일이 있었나

  • 1944년 5월경, 만 13~14세였던 원고들은 학교 교장이나 담임교사, 이웃 반장으로부터 "일본에 가면 상급학교에 진학시켜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근로정신대에 지원했다.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권유자들은 지원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하기도 했다.
  • 원고들은 1944년 5월 말경 열차와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피고의 나고야항공기 제작소 도토쿠 공장으로 보내졌다. 이들은 비행기 부품 페인트칠, 부품 그리기, 판 자르기, 파이프에 천 꿰매기 등의 작업을 했다.
  • 작업 중에는 옆을 보거나 대화를 할 수 없었고, 화장실도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일본인 반장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원고 D는 작업 도중 절단기에 왼쪽 집게손가락이 잘리는 상해를 입었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 원고들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했고, 4평 남짓한 방에서 6~8명이 함께 생활했다. 식사는 양과 질이 모두 부실했고, 가족과의 편지도 검열을 받았으며, 외출은 감시원이 동행하는 집단 외출만 허용됐다. 약속과 달리 교육을 받지 못했고 임금도 받지 못했다.
  • 1944년 12월 7일 동남해 지진으로 공장 건물이 무너지면서 망 G가 사망했고, 원고 A는 천장이 무너져 쇠막대기가 옆구리를 관통하는 상해를 입었다. 이후 공습이 심해지자 1945년 봄에 다른 공장으로 옮겨졌고, 일본 패망 후 1945년 10월경 귀국했다.
  • 귀국 후 원고들은 주변에서 위안부로 오해를 받아 결혼 등에 어려움을 겪고 가정폭력 등 사회적 고통을 겪었다.

한눈에 보는 결론

원고들은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로서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은 피고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해 원고 A, B, C, D에게 각 1억 5천만 원, 원고 E에게 8천만 원을 지○○라고 판결했다. 나머지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소송비용은 원고 1/4, 피고 3/4로 나누어 부담하게 했다.

법원은 왜 그렇게 판단했나

  • 법원은 일본 정부가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여자정신근로령 등을 통해 한반도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한 체제를 인정하고, 원고들이 만 13~14세의 어린 나이에 속아 지원 형식으로 끌려가 피고 공장에서 노동한 사실을 확인했다.
  • 원고들이 임금을 받지 못했고, 열악한 기숙사 생활과 서신 검열, 외출 제한, 폭행 등 인권 침해를 당한 점을 들어 피고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다.
  • 원고 D가 작업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상해를 입었고, 망 G가 지진으로 사망한 점 등 생명과 신체에 대한 침해도 피고의 책임 범위에 포함된다고 봤다.
  • 원고들이 귀국 후 위안부로 오해받아 정신적 고통을 겪은 점도 손해배상의 근거로 삼았다.
  • 다만 원고들이 청구한 금액 중 일부는 법원이 정한 위자료와 재산상 손해 산정 기준에 따라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원고 E의 청구 중 일부만 인정됐다.

핵심 정리

이 판결은 일제 강점기 근로정신대 동원이 강제노동에 해당하며, 기업이 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점을 확인한 사건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속아 끌려간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와 정신적 고통을 법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사 판결 결과

이 사건원고 일부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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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나2017165·서울고등법원·2023-11-23·2심·원고 일부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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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나44947·서울고등법원·2013-07-10·2심·원고 일부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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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나201716·서울고등법원·2023-11-23·2심·원고 일부 승소

일본제국이 한반도 등지에서 10대 여성들을 기망·납치·유인하여 위안부로 동원하고 위안소에서 성행위를 강요한 불법행위에 대해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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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나6801·서울중앙지방법원·2023-11-21·2심·원고 패소

원고들이 피고에게 후원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후원금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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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광 주 지 방 법 원 제 12민 사 부 판 결 사 건2012가합10852 손해배상(기) 원 고1. A 2. B 3. C 4. D 5. E 피 고**** 변 론 종 결2013. 10. 4. 판 결 선 고2013. 11. 1. 주 문 1. 피고는 원고 A, B, C, D에게 각 150,000,000원, 원고 E에게 80,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2013. 10. 4.부터 2013. 11. 1.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각 기각한다. 3. 소송비용은 1/4은 원고들이, 3/4은 피고가 각 부담한다. - 2 -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 구 취 지 피고는 원고 A, B, C, D에게 각 200,000,000원, 원고 E에게 450,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 한 돈을 지급하라. 이 유 1.인정사실 가.당사자들의 지위 망 F, 망 G와 원고 A, B, C, D(이하 ‘원고 등’이라 한다)는 모두 1929년경부터 1931년경 사이에 한반도에서 출생한 한국인들이고, 원고 E은 망 F의 남편이자 망 G의 오빠이다. ****(피고와 구별하여 이하 ‘구 미쓰비시’라고 한다)는 일본에서 설립되어 기계제작소, 조선소 등을 운영하던 회사이다. 나.일본의 한반도 침탈과 태평양전쟁 등의 발발 1)일본 정부는 1910. 8. 22. 대한제국과 사이에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한 후 1937.경 일어난 중일전쟁과 1941.경 일어난 태평양전쟁을 치루면서 군수산업에서의 노동 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8. 4.경 ‘국가총동원법’을, 1939. 7.경 ‘국 민징용령’을 각 공포하고, 한반도에서는 모집 형식의 노무동원계획을 실시하여 노동력의 통제와 총동원체제를 확립하고자 하였고, 1940.경에는 ‘조선직업소개소령’을 공포하고, 1941.경에는 ‘국민근로보국협력령’을 시행하고, 1942.경에는 ‘국민동원계획’을 세워 전쟁 - 3 - 을 위한 군수산업에 필요한 노동력 동원을 확대해 나갔다. 2)일본 정부는 1943. 9. 13. 차관회의에서 필요한 여성 근로요원들을 확보하기 위하여 ‘신규학교 졸업자, 14세 이상의 미혼자, 정비되어야 할 불급불요학교 재학자, 기업 정비에 의한 전직가능자’를 동원대상으로, ‘항공기관계공장, 정부작업창’을 배치장소로, ‘도청부현의 지도 아래 시군촌장에게 취직 권장을 노력하도록 하고, 반상회, 부락회, 이웃 조, 부인회, 학교장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협력시키며, 도청부현 지도 아래 학교장 등이 학교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여자정신대를 모집할 것’을 동원방법으로 하는 ‘여자근로 동원의촉진에관한건’을 의결하였고, 1944. 3. 18.에는 ‘여자정신대제도강화방책요강’을 결 정하여 일본국 내의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정신대로 조직시켜 필요한 업무에 협력할 것을 명령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1944. 6. 21.에는 ‘여자정신대수입측조치요강’을 결정 하였다. 일본 정부는 1944. 8. 23. ‘여자정신근로령(1944년 칙령 제519호)’을 공포 시행하 여 한반도에서도 시행하였다. 3)한반도에서 근로정신대 동원은 위와 같은 ‘여자정신근로령’ 시행 전부터 행해 지고 있었는데, 1944.경 이후에는 특히 늘어나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를 통해서 국민 학교 6학년이나 국민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모집이 행해졌다. 4)여자정신대제도강화방책요강 및 여자정신근로령에서는 기본적으로 국민등록 자인 여성들을 정신대 대원으로 할 것으로 정하고 있으나, 당시 한반도에서 여성의 국민 등록은 기능자, 즉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기능자로서 중학교 정도의 학교 졸업자 또는 실력과 경험에 의해 광산기술사, 전기기술자, 전기통신기술자 등으로 현직에 취업하고 있 거나 예전에 일한 적이 있는 자만으로 한정되어 있어, 국민등록자의 범위는 매우 좁았다. 그러나 위 여자정신대제도강화방책요강 및 여자정신근로령에는 ‘특히 지원을 한 자는 정 - 4 - 신대원으로 할 것을 막지 않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역시 위와 같이 지원이라는 형식으로 근로정신대원 모집이 행해졌다. 모집된 근로정신대원들은 구 미쓰비시 공장, **** 도야마 공장, ****, **** 등의 군수 공장에 동원되었다. 5)여자정신근로령은 정신근로대를 받으려고 하는 자는 지방장관에게 이를 청구 또는 신청하고 지방장관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 시정촌장 기타 단체의 장 또는 학교장 에 대하여 대원의 선발을 명하여 그 결과를 보고받고, 지방장관이 대원을 결정하여 통지 하면 이 통지를 받은 자는 정신근로를 하고 정신근로대를 받게 된 자가 원칙적으로 그 경비를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원고 등의 근로정신대 지원 등 1)원고 등은 1944. 5.경 자신이 졸업하거나 재학 중인 국민학교의 교장, 담임교 사나 이웃조의 애국반 반장으로부터 근로정신대원에 지원하여 일본에 가면 상급학교에 진학시켜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근로정신대에 지원하였다. 원고 등의 가족 들은 원고 등이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근로정신대 지원을 권유한 사람들은 만 13, 14세에 불과한 원고 등에게 근로정신대에 지원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하기도 하였다. 2)원고 등은 1944. 5. 말경 각자의 주거지 부근에서 다른 근로정신대원들과 집결 하여 그들과 함께 열차를 타고 ****로 가 배를 타고 일본 ****에 도착하였고, 그 곳에서 기차를 타고 ****까지 이동하여 그곳에 있는 당시 구 미쓰비시의 ****항공기 제작소 도토쿠 공장(이하 ‘이 사건 공장’이라 한다)으로 갔다. 3)원고 등은 이 사건 공장 제4히시와료에 노무자로 배치되었는데, 원고 A, B, 망 - 5 - G는 비행기 부품에 페인트칠을 하는 일을, 원고 C은 듀랄루민 판에 비행기 부품을 그려 서 나르는 일을, 원고 D는 듀랄루민 판을 자르는 일을, 망 F는 긴 파이프에 천을 꿰매는 일을 하였다. 원고 등은 작업을 하는 도중에 곁을 보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고, 화장실에 갈 때도 허가를 받아야 했고, 일본인 반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하였다. 원 고 등은 원고 D가 작업 도중 절단기에 왼쪽 집게손가락이 잘리는 상해를 입는 등 작업 도중 다치기도 하였는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 4)원고 등은 각자의 작업장에서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 시까지 위와 같은 노동을 하여야 했고, 하루 작업을 마치면 구 미쓰비시가 마련한 기숙사 로 돌아가 숙식을 해결하였는데, 식사의 양이나 질은 현저히 부실하였고, 4평 정도의 좁 은 방에서 6~8명의 근로정신대원들이 함께 생활하였다. 한반도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의 서신 교환도 사전검열에 의하여 그 내용이 제한되었다. 5)원고 등은 자유로운 외출을 할 수 없었고, 집단으로 외출하는 경우에도 감시원 이 동행하였다. 원고 등은 원래의 약속과는 달리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임금을 지급 받은 사실도 없다. 6)1944. 12. 7. 오후 1:30경 동남해 지진이 발생하였는데, 망 G는 이 사건 공장 건물 중 상당부분이 무너지면서 사망하였고, 피고 A은 천정이 무너지면서 쇠막대기가 옆 구리를 관통하는 상해를 입었다. 7)동남해 지진 이후 ****에 대한 공습이 심해지자 1945. 1.경 이 사건 공장 중 본부 사무소, 조립, 부품 제작 부문이 ****에 있는 ****으로 이전하여 원고 등도 1945. 봄경 ****으로 이동하였다. 일본이 1945. 8. 15.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근로정신대원들은 1945. 10.경 한반도로 귀국하였다. - 6 - 8)원고 등은 귀국 이후 주변 사람들이 근로정신대원을 위안부로 오인하자 근로 정신대원으로 일본에 갔다 온 사실을 숨겼는데, 원고 A은 결혼하고 10년 정도 지난 후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가출을 하였고, 원고 B은 남편이 사망할 때까지 그 사실을 숨 겼고, 원고 C은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과 1994. 10.경 이혼하였으며, 원고 D는 그 사실 을 알게 된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을 당했다. 라.근로정신대와 위안부의 구별 1)1930년대 이후 특히 중일전쟁이나 태평양전쟁이 전면화되는 1938.경부터 1945.경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여성들 중 다수가 군위안부로 끌려갔고, 그 중에는 대부분 10대에서 20대였으며, 미성년인 여성들도 많았다. 2)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43.경부터 1945.경까지 주로 국민학교 졸업직후인 12세부터 16세 정도의 어린 소녀들이 근로정신대로 동원되어 일본에 보내졌으나, 그 수 는 군 위안부에 비하면 소수이다. 3)군 위안부의 경우 경찰과 군대의 개입, 납치 등의 방법으로 끌려가기도 하였으 나, 대부분은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돈을 많이 준다’는 등의 말로 속여, 간호사, 여자정신대, 위문단 등에 취업시켜주는 것처럼 유혹하는 방법으로 모 집하였다. 근로정신대의 경우 ‘여학교에 갈 수 있다’,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속여서 동원하였으며, 대다수의 경우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민학교의 교사, 교장, 면장 등 행정기관이나 헌병들이 관여하여 모집하였다. 4)군 위안부를 모집할 때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모집된 경우는 거의 없었고, 종군 간호원, 여자정신대, 위문단, 가극단, 봉사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모집하였다. 한반도 에는 1940년 이후 농촌정신대, 학도정신대, 보국정신대, 국어보급정신대, 보도정신대 등 - 7 - 조선총독부 혹은 일본군에 의하여 정신대라는 명칭이 쓰인 조직은 사회 전반에 걸쳐 있 었고, 1944.경 이후 조선총독부는 대대적인 선전으로 근로정신대를 동원하였다. 마.일본국의 강제노동금지 조약 가입 1)일본국은 1930. 6. 28.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을 채택하고, 위 조약을 1932. 10. 15. 비준하고, 1932. 11. 21. 비준등록 하였다. 2)위 조약은 강제노동을 ‘어떤 자가 처벌의 위협 아래서 강요당한, 그 자가 임의 로 신고하지 않았던 모든 노무’로 규정(위 조약 제2조 제1항)하고 있다. 또한 위 조약은 예외적으로 강제노동이 인정되는 경우를 규정(위 조약 제10조 제1항)하고 있기는 하나, 그러한 경우에도 추정연령 18세 이상 45세 이하의 건장한 남자만이 강제노동을 하도록 규정(위 조약 제11조 제1항)하고 있어 여성이나 18세 미만의 아동에 대하여는 어떠한 강 제노동도 금지하고 있다. 3)위 조약은 합법적인 강제노동의 경우에도 상당 액수의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 다고 규정(위 조약 제14조)하고 있다. 바.피고의 설립 1) 구 미쓰비시는 일본의 패전 이후 일본 내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의 재벌해 체정책을 따름과 아울러 패전으로 인하여 일본 기업들이 부담하게 될 엄청난 액수의 배 상 및 노무자들에 대한 미지급임금 채무 등의 해결을 위하여 제정된 일본의 회사경리응 급조치법상의 특별경리회사, 기업재건정비법상의 특별경리주식회사로 지정된 후, 1949. 7. 4. 기업재건정비법에 의한 재건정비계획 인가신청을 하여 1949. 11. 3. 신청한 내용대 로 주무대신의 인가를 받았다. 2)구 미쓰비시는 1950. 1. 11. 그 재건정비계획에 따라 해산하기로 하고, 같은 날 - 8 - 구 미쓰비시의 현물출자 등에 의하여 기업재건정비법상의 새로운 회사인 중일본(中日本) 중공업 주식회사(상호가 1952. 5. 29. 신****로, 1964. 6. 1. 미쓰비 시중공업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동일본(東日本)중공업 주식회사(상호가 1952. 5. 27. 미쓰비시일본중공업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서일본(西日本)중공업 주식회사(상호가 1952. 5. 27. 미쓰비시조선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의 3개 회사(이하 새로이 설립된 3개 회사를 합쳐 ‘제2회사’라고 한다)가 설립되었다. 그 뒤 중일본중공업 주식회사가 1964. 6. 30. 동일본중공업 주식회사, 서일본중공업 주식회사의 2개 회사를 흡수합병함으로써 현 재의 피고로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 미쓰비시의 종업원들은 직위, 급료를 그대로 하고 구 미쓰비시에서의 재직기간을 통산하여 퇴직금을 산정하기로 하여 제2회사로 승계되었 고, 제2회사의 초대사장들은 모두 구 미쓰비시의 상무이사들이 취임하였다. 또한, 피고 자신도 구 미쓰비시를 피고의 기업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있다. 3)회사경리응급조치법은 “특별경리회사에 해당될 경우 그 회사는 지정시(1946. 8. 11. 00:00을 말한다. 제1조 제1호)에 신계정과 구계정을 설정하고(제7조 제1항), 재산 목록상의 동산, 부동산, 채권 기타 재산에 대하여는 「회사의 목적인 현재 행하고 있는 사업의 계속 및 전후산업의 회복진흥에 필요한 것」에 한하여 지정시에 신계정에 속하 며, 그 외에는 원칙적으로 지정시에 구계정에 속하고(제7조 제2항), 지정시 이후의 원인 에 근거하여 발생한 수입 및 지출을 신계정의 수입 및 지출로, 지정시 이전의 원인에 근 거하여 발생한 수입 및 지출은 구계정의 수입 및 지출로 경리처리하며(제11조 제1, 2항), 구채권에 대해서는 변제 등 소멸행위를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변제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구계정으로 변제하여야 하고, 신계정으로 변제하는 경우는 특별관리인의 승인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일정한 금액의 한도에서만 가능(제14조)”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 9 - 4)구 미쓰비시는 회사경리응급조치법, 기업재건정비법에 따라 1946. 8. 11. 오전 0시를 기준으로 하여 신계정과 구계정을 분리한 후, ‘회사의 목적인 현재 행하고 있는 사 업의 계속 및 전후산업의 회복진흥에 필요한 동산, 부동산, 채권 기타 기존 재산 등’을 신 계정에 속하도록 한 후 위 재산을 현물 출자하여 3개의 제2회사를 설립하였고, 그 외 그 때까지 발생한 채무를 위주로 한 구계정상의 채무를 부담하면서 청산회사가 된 구 미쓰 비시는 1957. 3. 25. 설립된 료주(菱重) 주식회사에 흡수합병되었다가 1957. 10. 31. 해산 하였다. 사.태평양전쟁 종전 이후의 상황 1)대일평화조약의 체결 태평양전쟁이 종전된 후 1951. 9. 8. ****에서 미국, 영국 등을 포함한 연합국과 일본국은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일평화조약을 체 결하였는데, 위 조약 제4조 (a)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위 조약 제2조에 규정된 지역에 존재하는 일본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그리고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을 상대 로 한 청구권과 일본국에 존재하는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 소유의 재산, 그 리고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의 일본국 및 일본국 국민들에 대한 청구권의 처 리는 일본국과 위 지역의 통치 당국간의 특별 협정이 규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정하였 다. 2)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국교H를 위한 조약과 부속협정의 체결 대일평화조약 제4조 (a)의 규정취지에 따라 1951. 말경부터 대한민국 정부 와 일본국 정부 사이에 국교H 및 전후 보상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1965. 6. 22. ‘국교H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의 하 - 10 - 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한다)이 체결되었는데, 청구권협정은 제1조에서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 로 한다“고 정함과 아울러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1.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 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 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3.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으 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 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또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I)은 위 제2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a)“재산,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e)동조 3.에 의하여 취하여질 조치는 동조 1.에서 말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여질 각국 의 국내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g)동조 1.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 - 11 - 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 인하였다. 그리고 위 합의의사록에 적시된 대일청구 8개 요강은 “① 1909년부터 1945 년까지 사이에 일본이 조선은행을 통하여 한국으로부터 반출하여 간 지금(地金) 및 지 은(地銀)의 반환청구, ② 1945. 8. 9. 현재 및 그 이후의 일본의 대(對)조선총독부 채무 의 변제청구, ③ 1945. 8. 9. 이후 한국으로부터 이체 또는 송금된 금원의 반환청구, ④ 1945. 8. 9. 현재 한국에 본점, 본사 또는 주사무소가 있는 법인의 재일(在日)재산의 반 환청구, ⑤ 한국법인 또는 한국자연인의 일본은행권,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 ⑥ 한국인의 일본국 또는 일본인에 대한 청구로서 ① 내 지 ⑤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한일회담 성립후 개별적으로 행사할 수 있음을 인정할 것, ⑦ 전기(前記) 제 재산 또는 청구권에서 생한 제 과실(果實)의 반환청구, ⑧ 전기 (前記) 반환 및 결제는 협정성립 후 즉시 개시하여 늦어도 6개월 이내에 완료할 것” 등 이다. 3)청구권협정에 따른 후속조치 가)청구권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은 1965. 12. 17. ‘재산 및 청구권에 관 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른 대 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법률 제144호. 이하 ‘재산권조치법’이라 한 다)을 제정.시행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일본국 또는 그 국민에 대한 채권 또는 담보권으로 협정 제2조의 재산, 이익에 해당하는 것을 1965. 6. 22.에 소 - 12 - 멸한 것으로 한다“는 것이다. 나)한편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지급되는 자금을 사용하기 위한 기 본적 사항을 정하기 위하여 1966. 2. 19.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1) ’을 제 정하고, 이에 이어 1971. 1. 19.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 2) ’을 제정하여 10개월 간 국민의 대일청구권 신고를 받은 결과 총 109,540건의 신고가 접수되었는바, 위 신고 분에 대한 실제 보상을 집행하기 위하여 1974. 12. 21.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 률’을 제정하여 1975. 7. 1.부터 1977. 6. 30.까지 사이에 총 83,519건에 대하여 총 9,187,693,000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였고, 위 각 법률은 1982. 12. 31. 모두 폐지되었다. 그런데 앞서 본 법률들은 강제징용 피해자 중 사망자에 대한 보상만을 규정하였을 뿐이 고, 원고 등은 현재까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민관공동위원회의 개최 원고 등과 같은 강제징용자인 I, J, K, H 등은 외교통상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서울행정법원 2002구합33943)에서 2004. 2. 13. 승소판결을 받았고(외교통상부장관의 항소취하로 제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됨), 이에 따라 대한민 국 정부는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일부 문서를 공개한 후 2005. 8. 26. ‘한일회담 문서공 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이하 ‘민관공동위원회’라고 한다)를 개최하고, “청구 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 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1) 제5조 제1항 대한민국 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은 이 법에서 정하는 청구 권자금 중에서 보상하여야 한다. 제2항 전항의 민간청구권의 보상에 관한 기준, 종류, 한도 등의 결정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2) 제2조 (신고대상의 범위) 제1항 이 법의 규정에 의한 신고대상의 범위는 1947년 8월 15일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일본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자를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일본국 및 일본국민에 대하여 가졌던 청구권 등으로서 다음 각 호에 게기하는 것으로 한다. 9. 일본국에 의하여 군인, 군속 또는 노무자로 소집 또는 징용되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망한 자 - 13 - 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 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공식의견을 표명하였다. 자.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각국의 전후배상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하면서 프랑스는 승전국이 되었고, 독일국과 일본 국은 패전국이 되었다(대한민국은 1951.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일본국의 반대로 승전국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승전국, 패전국, 식민지에 서 독립한 모든 나라들이 각자의 역사에서 과거청산을 위하여 노력하였고 이는 현재까 지 계속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위 전쟁의 희생자에 대한 배상 또한 포함되어 있다. 1)독일국의 경우 독일의 경우 패전 직후 사법적으로는 연합국의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에 서 국제법상 처음으로 반인류범죄를 규정하여, 나찌의 침략전쟁, 유대인 및 민간인 학 살의 책임자를 기소, 처벌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탈나찌화 숙청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패전 직후의 일반 독일인들은 이를 전쟁패배의 대가로 받아들이면 서 여전히 나찌즘을 “이념은 좋았지만 실행은 잘못된 것”이라는 우호적인 평가를 하였 고, 연합국의 전범재판이 끝난 후 세계적으로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하는 냉전시대가 오면서 2차례의 사면법으로 나찌의 주요인물을 사회나 직장에 복귀시키는 입법을 하였 다. 그러다가, 아데나워의 정권의 정치적 안정과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린 경제 적 번영 의 바탕 위에서, 나찌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늦게 태어난 행운아”들로의 세대 - 14 - 교체가 되고 나찌즘과 그 시대에 있었던 일들을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성숙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토양위에서, 1960년대 후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하면서부 터 서독 내의 자발적인 나찌즘 청산작업이 본격화 되었고, 1945년을 패전이 아닌 나찌 즘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후 독일은 통일 이전까지 유태인 등 나찌정권의 피해자에게 독일연방배 상법에 의하여 84조 원을 배상하였으며, 2000.경에는 약 570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 강 제노동자들의 나찌정권 기간 동안의 임금과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을 위하여 정부와 기 업이 공동으로 출연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Erinnerung, Verantwortung und Zukunft)라는 이름의 재단을 설치하였다. 독일의 진정한 과거청산은 전후 한 세대가 지난 후인 196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졌고, 다시 한 세대가 지난 1990년대에 이르러 한 나라의 차원을 넘어 그 대상 자가 확대되었으며, 무엇보다 나찌즘에 대한 과거청산은 독일 통일 후 동독 독재정권 의 청산에 관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줄이게 되었다. 2)미합중국의 경우 재미 일본인을 강제 이주시킨 미합중국도 그 피해에 대하여 배상하였다. 미 합중국 의회는 1988.경 시민적자유법을 제정하면서 강제수용을 사죄하는 조항을 명시 적으로 규정하여 의회가 나라를 대표하여 재미 일본인들에게 사죄하고, 시민적 자유 공공 교육기금을 설립하였다. 위 기금에 의해 수용당시 일본계 미국시민 또는 영주 외 국인이었던 자, 또한 배상법 설립 당시 생존하고 있던 자는 현재의 국적을 불문하고 배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 15 - 3)캐나다의 경우 캐나다는 캐나다 정부가 캐나다 거주 일본인에 대하여 강제이주와 강제수용 을 하여 재산을 빼앗고 일본으로 강제 송환시키고 선거권을 박탈한 것에 대하여 배상 하였다. 캐나다 정부는 1988.경 전 캐나다 일본인 협회와 사이에 캐나다 정부가 캐나 다 일본인을 강제 수용한 것 등에 대하여 인권침해로 인정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서약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하였다. 위와 같은 협정에 근거하여 캐나다 정부는 일본계 캐나다인 사회에 복리와 인권옹호의 활동비 등으로 1,200만 달 러를 지불하였다. 또한 이문화 간의 상호이해와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하여 캐나다 인종관계기금을 마련하였다. 4)일본국의 경우 일본국은 1988.경까지 13건의 전쟁 원호법을 제정하여 약 38조 엔을 지출하 였으나, 그 대상은 군인이나 군속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전쟁피해자나 강제징용자에 대한 배상이 아니었다. 결국 일본국은 독일국과 달리 자발적인 과거청산을 하지 않아 대한민국, 중국과 끝임 없는 외교마찰을 빚고 있으며, 현재 대만, 필리핀 등 동남아 여 러 나라들의 종군위안부, 강제징용자, 원폭 피해자, 한센병 환자 등으로부터 일본 군국 주의자들의 전쟁으로 인한 법적 책임을 자국 뿐 아니라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제기 받고 있다. 차.일본에서의 소송경과와 원고 등의 사망 1)원고 등은 1999. 3.경 일본국 ****지방재판소에 피고 등을 상대로 구 미쓰비 시의 강제징용 등 국제법 위반 및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으로 1인당 3,000 만 엔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2005. 2. 24. 원고청구기각 판결을 선고받았 - 16 - 다. 그 후, ****고등재판소에 항소하였으나 2007. 5. 31. 항소기각 판결을 선고받았으 며, 최고재판소가 2008. 11. 11. 원고 등의 상고를 기각하여 위 판결이 확정되었다(이하 이와 같은 일본에서의 소송을 ‘이 사건 일본소송’이라 하고, 그 판결들을 ‘이 사건 일본’판 결 이라 한다). 2)원고 등은 이 사건 일본소송이 종료한 후 약 2년간 17차례에 걸쳐 피고 측과 배상을 위한 협상을 하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2012. 10. 24. 대한민국 법원에 피 고를 상대로 일본에서 주장한 청구원인과 동일한 청구원인을 내용으로 하여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3)망 F는 이 사건 일본 소송이 제1심 법원에 계속 중이던 2001. 12. 3. 제주에서 사망하였고, 사망 당시 상속인으로는 배우자인 원고 E과 3명의 자녀(L, M, N)가 있었다. [인정근거] 다툼이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7호증(가지 번호 있는 경우 각 가지 번호 포함), 이 법원의 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에 대한 각 사실조회 결과, 원고들의 당 사자본인 신문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본안전 항변에 관한 판단 가.피고의 주장 피고는, 국제사법 부칙 제2조는 “이 법 시행(2001. 7. 1.) 이전에 생긴 사항에 대 하여는 종전의 섭외사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종전의 섭외사법에는 국제재판 관할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고, 이와 관련한 조약이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 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섭외적 사건에 관한 국내법원의 재판관할을 인정할지 여 부는 소송당사자들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을 기한다는 기본이념에 따라 조리에 의 하여 결정하여 하는데, 원고 등이 일본에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하여 증거조사를 모두 - 17 - 마친 후 패소 판결을 선고받아 확정되었고, 피고는 대한민국에 지점이나 영업소가 없 으며, 이 사건 소송의 청구원인 사실이 모두 일본에서 일어나 대한민국과는 실질적 관 련성도 없고, 일본 법인인 피고로 하여금 대한민국 법원에서 일본소송과 동일한 내용 의 소송을 반복하게 하는 것은 앞서 본 기본이념들에 반하므로, 이 사건 소는 재판관 할권이 없는 대한민국 법원에 제기되어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나.판단 국제재판관할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당사자 간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 및 경 제를 기한다는 기본이념에 따라야 할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소송당사자들의 공평, 편의 그리고 예측가능성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재판의 적정, 신속, 효율 및 판결 의 실효성 등과 같은 법원 내지 국가의 이익도 함께 고려하여야 할 것이며, 이러한 다 양한 이익 중 어떠한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지 여부는 개별 사건에서 법정지와 당 사자와의 실질적 관련성 및 법정지와 분쟁이 된 사안과의 실질적 관련성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하고(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 결, 대법원 2005. 1. 27. 선고 2002다59788 판결 등 참조), 국제재판관할에 관하여 조 약이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상의 원칙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고 이에 관한 우 리나라의 성문법규도 없는 이상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의 토지관할에 관한 규정 또한 위 기본이념에 따라 제정된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위 규정에 의한 재판적이 국내에 있을 때에는 섭외적 사건에 관한 소송에 관하여도 우리나라에 재판관할권이 있다고 인정함 이 상당하다(대법원 1992. 7. 28. 선고 91다41897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 보건대, 이 사건 청구는 구 미쓰비시가 일본국과 함께 원고 등을 강제연행한 후 강제노동을 시킨 일련의 행위가 불법행위이고 피고는 구 미쓰비시의 원 - 18 - 고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을 그대로 부담한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위와 같은 일련의 불법행위 중 일부가 이루어진 불법행위지인 점, 원고들 이 이 사건에서 주장하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일본 내의 물적 증거는 거의 멸실된 반면 피해자인 원고 등이 모두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고, 사안의 내용이 대한민국의 역사 및 정치적 변동 상황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점 등을 알 수 있어, 대한민국은 이 사 건의 당사자 및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대한민 국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위 주장 은 이유 없다. 3.본안에 관한 판단 가.당사자의 주장 요지 1)원고들의 주장 원고들은, 일제강점 아래에서 피고의 전신인 구 미쓰비시는 원고 등에게 행 정기관 등을 통해 교육 제공, 상급학교로의 진학, 충분한 식사와 임금 제공 등을 보장 한다면서 회유하여 모집한 후 일본으로 동원하였으나, 실제로 원고 등은 구 미쓰비시 의 **** 비행기 제작소나 ****에서 원고 등의 의사에 반하여 자유를 박탈당 한 상황에서 강제노동에 혹사당하고 교육의 기회나 임금 등을 전혀 제공받지 못하였으 므로, 구 미쓰비시와 사실상 동일한 법인으로 구 미쓰비시의 채무를 승계한 피고는 원 고 등에게 각 200,000,000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고, 망 F, 망 G의 상속인인 원고 E에게 망 F, 망 G의 위 위자료 합계 400,000,000원 및 원고 E 본인의 위자료로 50,000,000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2)피고의 주장 - 19 - 이에 대하여 피고는, ① 원고 등은 이미 동일한 청구를 한 이 사건 일본소 송에서 패소확정판결을 받았으므로 원고들의 청구는 기판력에 저촉되어 기각되어야 하 고, ② 피고는 구 미쓰비시와 법인격이 다르므로 구 미쓰비시의 원고 등에 대한 손해 배상채무를 승계하지도 않았으며, ③ 원고들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채권은 청구권협정 및 그 후속조치로 인하여 소멸하였고, ④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위 손해배상채 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거나 제척기간이 도과하였으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다고 주장한다. 나.구 미쓰비시의 불법행위 책임의 성립 1)준거법의 결정 이 사건에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성립하는지 여부를 판단하 는 기준이 되는 준거법은 법정지인 대한민국에 있어서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적용될 준거법의 결정에 관한 규범(이하 ‘저촉규범’이라 한다)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 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 앞서 본 인정사실에 따르면 구 미쓰 비시의 행위 및 그 결과발생이라는 불법행위는 구 섭외사법(1962. 1. 15. 법률 제996호 로 제정된 것, 이하 같다)이 시행된 1962. 1. 15. 이전에 발생하였다. 이와 같이 1962. 1. 15. 이전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은 1912. 3. 28.부터 일왕(日王)의 칙령 제21호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의용(依用)되어 오다가 군정 법령 제21 호를 거쳐 대한민국 제헌헌법 부칙 제100조에 의하여 “현행법령”으로서 대한민국 법질 서에 편입된 일본의 ‘법례(法例)’(1898. 6. 21. 법률 제10호)이다. 위 ‘법례’에 의하면 불 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과 효력은 불법행위 발생지의 법률에 의하는데 (제11조), 이 사건 불법행위지는 대한민국과 일본에 걸쳐 있으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 - 20 - 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판단할 준거법은 대한민국법 또는 일본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원고 등이 일본법이 적용된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패소한 점에 비추어 불법행위 의 피해자들인 원고 등은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준거법으로 대한민국법을 선택하려 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추인되는 점이나 이와 같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여러 국가 의 법이 있을 경우 법정지의 법원은 당해 사안과의 관련성의 정도, 피해자의 권리보호 의 필요성과 가해자의 준거법에 대한 예측가능성 및 방어권보장 등 당사자 사이의 공 평, 형평과 정의, 재판의 적정성 등을 함께 고려하여 준거법을 선택.결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인데 위와 같은 요소를 모두 고려할 때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함이 옳다고 보 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하여 판단하기로 한다. 나아가 제정 민법이 시행된 1960. 1. 1.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판단 에 적용될 대한민국법은 제정 민법 부칙 제2조 본문에 따라 ‘구 민법(의용 민법)’이 아 닌 ‘현행 민법’이다. 2)판단 위 인정사실을 준거법인 현행 민법에 비추어 보면,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산업체인 군수공장에 필요 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핵 심적인 기간 군수산업체의 지위에 있던 구 미쓰비시는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인력동 원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인력을 확충하였는데, 원고 등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던 상황 아래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강도 환경 등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조 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강제연행 되었다. 나아가 여자근로정신대령의 규정에 비추어 구 - 21 - 미쓰비시의 신청으로 일본 정부가 필요 인원을 모집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 등 은 당시 만 13, 14세의 어린 소녀들로 1932.경 일본에서 비준 등록된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에서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강제노동의 대상들인데 구 미쓰비시 역시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구 미쓰비시 역시 원고 등이 강제연 행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리라고 보인다. 더욱이 원고 등은 만 13세, 14세의 미성년자들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 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협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 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알지 못한 채 강제노동을 하였다. 구 미쓰비시는 원 고 등으로 하여금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 무렵까지 노동에 종사하게 하면서, 삼엄한 감시를 하였고, 가족들과의 서신 교환도 사전 검열에 의하여 제한하고, 식사의 양과 질 역시 현저히 부실하며 임금도 전혀 지급하지 아니하였다. 1944. 12. 7. 동남해지진이 발생하여 이 사건 공장이 무너졌을 때에도 원고 등에게 적 당한 피난장소나 식량을 제공하는 등의 구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방치하였다. 위와 같은 구 미쓰비시의 원고 등에 대한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행위는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에 적극 동참한 반 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동남해 지진이 발생했을 때 원고 등에 대해 아무런 구 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방치하고 망 G를 사망에 이르게까지 한 행위는 사실상의 고용관계에 있는 원고 등에 대하여 사용자로서의 안전배려의무를 방기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며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 등이 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 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따라서 구 미쓰비시는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한 원고 등의 정신적 고통에 - 22 - 대하여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원고 등에 관한 이 사건 일본 판결의 기판력 인정 여부 피고가 구 미쓰비시의 불법행위책임을 그대로 부담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기에 앞서 원고 등에 관한 이 사건 일본판결이 기판력을 가지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법정지의 절차법인 우리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는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 하여야 한다는 점을 외국판결 승인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외국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 즉 외국판결을 승인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 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지 여부는 그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에서 외국판결의 승인 이 우리나라의 국내법 질서가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외국판결이 다룬 사안과 우리나라와의 관련성의 정도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하 고, 이때 그 외국판결의 주문뿐 아니라 이유 및 외국판결을 승인할 경우 발생할 결과 까지 종합하여 검토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 살피건대, 원고 등이 이 사건 소송과 동일한 청구원인으로 피고를 상대로 한 소 송을 일본법원에 제기하여 패소판결을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된 사실은 앞서 본 바 와 같으나, 갑 제1, 2호증(가지 번호 있는 경우 각 가지 번호 포함)의 각 기재에 의하 면, 앞서 본 이 사건 일본판결은 원고 등이 거주하던 한반도를 일본 영토의 구성부분 으로 봄으로써 위 원고들의 청구에 적용될 준거법을 외국적 요소를 고려한 국제사법적 관점에서 결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일본법을 적용한 사실, “일본국은 1952. 4. 8. 발표 한 평화조약 2조에서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여,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 을 포기했다”라고 전제한 사실, 구 미쓰비시가 사전 설명과 달리 원고 등을 이 사건 - 23 - 공장에서 자유가 제약된 상태로 위법하게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한 점, 실질적인 고용 주로서 원고 등에게 임금을 전혀 지급하지 아니하고, 안전배려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점 등 원고 등의 청구원인에 관한 일부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청구권협정과 일본의 재산권조치법에 의해 소멸하였다는 이유로 결국 위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청구 를 기각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사건 일본판결의 이유에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 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일제의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여자정신 근로령을 한반도와 원고 등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 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고, 부칙 제100조에서 는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고 하며, 부칙 제101 조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현행헌법도 그 전문에 “유구 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각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强占)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 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 일본판결 이유는 침략 - 24 - 전쟁의 수행을 위한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 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 더구나 당시 일본 정부가 ‘국가총동원법’ 등의 비상수단까지 동원하여 수행하였 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국제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침략전쟁이었다는 점에 대 하여는 국제사회가 인식을 함께 하고 있고, 이런 침략전쟁 및 이를 수행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세계 문명국가들의 공통적인 가치이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 면,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에 반하는 판결 이유가 담긴 이 사건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위 민사소송법에서 말하는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가 국제성까지 고려한 개념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헌법 등 국내법 질서가 근거하고 있고 지키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도덕적 신 념과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것임이 분명하다(민사소송법의 위 조항이 말하는 ‘대한민국 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의 의미는 외국 중재판정을 승인하거나 외국법 을 준거법으로 삼을 때 고려하는 대한민국의 ‘공서’와 동일한 것인데, 위의 각 경우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인 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6다20290 판결, 대법원 2006. 5. 26. 선고 2005므884 판결 등도 ‘공서’의 의미를 이와 동일한 취지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으 므로, 이 사건 일본판결이 대한민국에서 승인될 수 있음을 전제로 원고 등의 청구가 이 사건 일본판결의 기판력에 반하여 인정될 수 없다는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라.피고가 구 미쓰비시의 채무를 부담하는지 여부 먼저 구 미쓰비시의 해산 및 분할에 따른 법인격의 소멸 여부, 제2회사 및 피고 가 구 미쓰비시의 채무를 승계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준거법 역시 대한 - 25 - 민국의 저촉규범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데, 그 법률관계가 발생한 시점은 구 섭외 사법이 시행된 1962. 1. 15.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걸쳐 있다. 그 중 1962. 1. 15. 이전 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은 앞서 본 ‘법례’이다. 위 ‘법례’ 는 구 미쓰비시와 제2회사 및 피고의 법적 동일성 여부를 판단할 법인의 속인법에 대 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법인의 설립준거지법이나 본거지법에 의하 여 이를 판단한다고 해석되고 있었고, 구 미쓰비시와 제2회사 및 피고의 설립준거지와 본거지는 모두 일본이므로, 구 미쓰비시의 해산 및 분할에 따른 법인격의 소멸 여부, 채무 승계 여부를 판단할 준거법은 일단 일본법이 될 것인데, 여기에 회사경리응급조 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 위 ‘법례’ 제30조는 “외국법에 의한 경우에 그 규정이 공공의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때에는 이 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므로,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에 따라 준거법으 로 지정된 일본법을 적용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위반되면 일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법정지인 대한민국의 법률을 적용하여야 한다. 또한, 1962. 1. 15. 이후에 발 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구 섭외사법에 있어서도 이러한 법리는 마찬가지이다. 이 사건에서 외국법인 일본법을 문언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원고들은 구 미쓰 비시에 대한 채권을 피고에 대하여 주장하지 못하게 되는데, 앞서 인정사실에서 본 바 와 같이 구 미쓰비시가 피고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피고가 구 미쓰비시의 영업재산, 임 원, 종업원을 실질적으로 승계하여 회사의 인적, 물적 구성에는 기본적인 변화가 없었 음에도, 전후처리 및 배상채무 해결을 위한 일본 국내의 특별한 목적 아래 제정된 기 술적 입법에 불과한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 등 일본 국내법을 이유로 구 미쓰비시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채무가 면탈되는 결과로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 26 - 공서양속에 비추어 용인할 수 없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 따라서 일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당시의 대한민국 법률을 적용하여 보면, 구 미쓰비시가 위 인정사실의 바.항에서 본 바와 같이 책임재산이 되는 자산과 영업, 인력 을 제2회사에 이전하여 동일한 사업을 계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고 스스로 구 미쓰비 시를 피고의 기업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구 미쓰비시와 피고는 그 실질에 있어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여 법적으 로는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기에 충분하고, 일본국의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구 미쓰비 시가 해산되고 제2회사가 설립된 뒤 흡수합병의 과정을 거쳐 피고로 변경되는 등의 절 차를 거쳤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므로, 원고들은 구 미쓰비시에 대한 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마.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원고 등의 청구권이 소멸하였다는 주장에 관한 판단 살피건대 앞서 인정사실에서 본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위와 그 내용 및 후속 상 황 등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서, 청구권협정 제1조에 의해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은 제 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 ② 청구권협 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 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 - 27 - 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는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아니하였음은 물론 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아니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설령 원고 등의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① 국 가가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함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는 별개의 법인격 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되는 점, ② 국가가 조약을 통하여 국민의 개인청구권 을 소멸시키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임을 고려하면 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조약 체결로 국가의 외교적 보 호권 이외에 국민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인데, 청구권협정에 는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 분한 근거가 없는 점, ③ 일본이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 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시행한 조치 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원고 등의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 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 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국 내 에서 소멸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원고 등의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 로 소멸하지 아니하였다 할 것이므로, 원고들은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에 대 - 28 - 하여 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피고는 위와 같이 청구권협정을 해석하는 것이 대법원 2012. 5. 10.자 2012다 12863 심리불속행 판결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위 판결의 사안은 청구권협정 체 결과 관련한 대한민국 공무원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한 것으로 이 사건과 사안을 달리하는 것이고, 심리불속행 판결은 상고이유의 주장이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이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이거나 또는 그러한 주장 이 있더라도 원심판결과 관계가 없거나 원심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 때에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위 판결이 청구권협정에 관하여 피고의 주장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는 판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바.소멸시효 완성 주장에 관한 판단 1)준거법의 결정 원고 등의 청구권이 성립한 시점에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에 해당하 는 위 ‘법례’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과 효력은 불법행위 발 생지의 법률에 의하는데(제11조), 이 사건 불법행위지는 대한민국과 일본에 걸쳐 있으 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판단할 준거법은 대한민국법 또는 일 본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원고 등은 일본법이 적용된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패 소한 점에 비추어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준거법으로 대한민국법을 선택하려는 의사 를 가지고 있다고 추인되므로, 대한민국 법원은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하여 판단하 여야 한다. 나아가 제정 민법이 시행된 1960. 1. 1.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그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는지 여부의 판단에 적용될 대한민국법은 제정 민법 부칙 제2조 본문에 따라 ‘구 민법(의용 민법)’이 아닌 ‘현행 민 - 29 - 법’이다. 따라서 일본법이 준거법이라는 전제 아래서 제척기간이 도과되었다는 피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2)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항변의 가부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 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여기서 ‘권리를 행사 할 수 없는’ 경우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 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 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등 참조). 한편,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 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 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 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인용한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 면, ① 구 미쓰비시의 불법행위가 있은 후 1965. 6. 22. 한일 간의 국교가 수립될 때까 - 30 - 지는 일본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고, 따라서 원고 등이 피고를 상 대로 대한민국에서 판결을 받더라도 이를 집행할 수 없었던 사실, ② 1965년 한일 간 에 국교가 H되었으나,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모두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 구권협정 제2조 및 그 합의의사록의 규정과 관련하여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청구권이 포괄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견해가 대한 민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사실, ③ 일본에서는 청구권협정의 후속조치로 재산권조치법을 제정하여 원고 등의 청구권을 일본 국내적으로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 하였고 원고 등이 제기한 일본소송에서 청구권협정과 재산권조치법이 원고 등의 청구 를 기각하는 근거로 명시되기도 한 사실, ④ 그런데 원고 등의 개인청구권, 그 중에서 도 특히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 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원고 등과 비슷 하게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1990년대 후반 이후에야 서서히 부각되었고, 마침내 2005. 1. 한국에서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뒤, 2005. 8. 26.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민관공동위 원회의 공식적 견해가 표명된 사실, ⑤ 피고는 이 사건 일본 소송이 종료된 2008년 이 후 원고 등과 약 2년간 17차례에 걸쳐 피해 보상 등을 위한 협의를 계속한 사실, ⑥ 대법원은 2012. 5. 24. 2009다22549호, 2009다6820호 판결을 통해 원고 등과 같은 강 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일본 판결은 대한민국의 공서에 반하여 승인될 수 없다고 판시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앞서 본 바와 같이 구 미쓰비시와 피고의 동일성 여부에 대하여도 - 31 -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일본에서의 법적 조치가 있었던 점을 더하여 보면 적 어도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시점인 2012. 10. 24.까지는 원고들이 대한민국에 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에 더하여 구 미쓰비시의 이 사건 불법행위는 원고 등 개인의 존엄을 부 정하며 정의·공평에 현저히 반하는 행위로 채권자인 원고 등의 보호필요성이 큰 점, 소 멸시효 제도는 일정기간 계속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곤란하게 되는 증거보전으로부터 구제하며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고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법적 보호에서 배제하기 위하여 인정된 제도인데 원고 등은 이 사건 일본소송을 제기하고 위 소송에서 패소한 이후에 또다시 이 사건 소를 제기하는 등 권리 위에 잠 자는 자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살펴보면, 구 미쓰비시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법적 지위에 있는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 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사.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판단 1)위자료의 액수 아래에서 설시하는 원고 등의 연령과 성별, 불법성의 정도 및 그 고의성, 피 고가 이러한 불법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그 관여 정도, 그로 인한 원고 등의 피해 의 정도, 그럼에도 불법행위 이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책임을 부정한 피고의 태도 등의 당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과 함께 이 사건 불법행위 시와 당심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함에 따른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의 변 경 등을 고려하고, 이와 같이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의 통화가치 변경 등을 - 32 - 고려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예외적으로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함에 따라 불법행위 시로부터 변론종결 시까 지 장기간 동안 배상이 지연됨에도 그 기간에 대한 지연손해금이 전혀 가산되지 않게 된다는 사정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대법원 2011. 7. 21. 선고 2011재다19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피고가 지급 하여야 할 위자료는 이 사건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원고 등 이 사건 근로정신대원 1 인당 150,000,000원으로, 근로정신대원의 가족인 원고 E 본인의 위자료는 30,000,000 원으로 각 정함이 상당하다(이 사건 위자료는 피고가 동일한 부산고등법원 2012나 4497호 사건의 원고들은 당시 만 18세에서 만 22세의 남성들로 강제노동기간이 11개 월 정도인데 비해, 이 사건 원고 등은 당시 만 13, 14세의 여성들로 일본이 1932.경 비 준 등록한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에 의하면 절대적으로 강제노동이 금지되는 나이였고 강제노동기간이 1년 5개월 정도인 점 등을 참작하여 산정하였다). 가)피고는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고 일본 제국 주의의 팽창을 위하여 침략전쟁을 수행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에 적극 협력하여 면밀한 계획 아래, 충분한 판단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만 13, 14세의 원고 등을 상급학교로의 진 학, 충분한 임금제공 등으로 기망하였고, 이에 원고 등의 가족들이 반대하자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할 듯이 원고 등을 위협하는 방법으로 강제연행 하였다. 나)피고는 위와 같이 원고 등을 강제로 연행하여 가혹행위를 하면서 강제노 동을 강요하였다. 이로 인하여 원고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가족으로부터 보 호를 받거나 가족을 부양할 기회를 빼앗기고, 교육의 기회나 직업선택의 자유도 박탈당 한 채 오로지 일본국이 패전할 때까지 피고가 강제하는 일정과 규범에 따라 노동에 종사 - 33 - 해야 하였다. 다)피고는 원고 등에게 강제노동을 강요하면서 최소한의 보호의무를 제공하 거나 임금을 지급하지도 아니하였고, 식사도 부실하며 외출이나 가족과 함께 주고받는 편지도 제한·검열하였다. 라)망 G는 이 사건 공장 내에서 동남해 지진으로 사망하였고, 원고 D는 이 사건 공장에서 강제노동하던 중 왼쪽 집게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마)나아가 위안부와 정신대는 모두 형식적으로 권유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그 권유가 사실상 경제적 이익을 가장한 기망에 불과한 것으로 행정기관이 모집에 관여 하는 등 위안부와 정신대 사이에서는 유사점이 많고, 당시 일본국 내에서도 위안부라는 말보다는 정신대라는 말이 널리 쓰여 피고도 근로정신대원인 원고 등이 위안부와 대한민 국에서 혼동되리라는 점을 예상할 것으로 보이고, 원고 등은 실제로 위안부로 오해받아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거나, 남편에게 자신의 과거를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 채 60년을 살아와야 했다. 바)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한 이후 세계 각국은 전쟁으로 인한 강제노동자 등 피해자들에게 전후배상을 위한 특별법을 만드는 등 배상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고, 군 수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로 노력하고 있음에 반해 피고와 일본국은 원고 등과 같은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하여 어떠한 손해배상도 하지 아니한 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책임을 부정하였다. 2)원고 E의 상속분에 관한 판단 원고 E은 자신의 동생인 망 G의 상속인으로서 G의 위자료를 청구한다고 주 장하므로 살피건대, G가 1944. 12. 7. 사망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당시 가족 내 - 34 - 의 여자가 사망한 경우 부가 상속하는 것이 관습법이라고 할 것인데, 이 법원의 강제 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에 대한 2013. 7. 3.자 사실조회결과에 의하면, G가 사망할 당 시 G의 아버지인 O이 생존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G의 위자료는 위 O이 단독 상속하였다고 할 것이어서, 원고 E이 G의 상속인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부분 청 구는 이유 없다. 다음으로 원고 E은 자신의 처인 망 F의 상속인으로 F의 위자료를 청구한다 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F가 사망할 당시 상속인으로 배우자인 원고 E 및 3명의 자녀 가 있었던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원고 E은 F의 위자료 중 그 상속지분에 따 라 50,000,000원(150,000,000원 × 3/9)을 상속받았다고 할 것이다. 3)지연손해금의 기산일 원고들은 피고의 위자료 지급채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 부터의 지연손해금을 청구하고 있다.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는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 이 그 참작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위자료 산정의 기준되는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 치 등도 변론종결시의 것을 반영해야만 하는바,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시기와 가까운 무렵에 통화가치 등의 별다른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위자료 액수가 결정된 경우에는 그 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더라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으나,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 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도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현저한 과잉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 - 35 - 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 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예외적으로 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변 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 103950 판결 참조).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보건대, 이 사건의 경우 불법행위 종료일인 1945.경 무렵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3. 10. 4.까지 사이에 60년 이상의 장기간이 경과 하고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으며, 그와 같이 변동된 사정까지 참작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위자료의 수액을 결정하였으므로, 이 사건 변론종결일 이 후의 기간에 대해서만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들이 위 위자료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 전일인 2013. 10. 3.까지의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부분은 이유 없다. 아.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 A, B, C, D에게 각 150,000,000원, 원고 E에게 80,000,000 원(= 망 F의 위자료 중 원고 E이 상속한 50,000,000원 + 원고 E 본인의 위자료 30,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3. 10. 4.부터 이 사건 판결 선고일인 2013. 11. 1.까지는 민법에서 정한 연 5%의, 그 다 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결론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녀들은 학교에 보내주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 36 - 거짓말에 속아 고향을 떠나야 했고, 일본에서 비인격적인 대우와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소녀들 중 누군가는 일본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고향 에 돌아왔으나 위안부라고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들의 피해에 대해 스스로 침묵하 면서 우리 사회의 경계인이 되어 살아야만 했다. 50년이 넘게 흘러 할머니가 된 소녀 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외면 하에 한국의 시민단체와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 변호 사들의 도움으로 10여년에 걸쳐 일본을 오가며 재판을 하였다. 그리고 이제 여든이 넘 어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한 채 다시 이 법정에 선 원고 등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같은 인간으로서 원고 등과 같은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일본 정부와 피고와 같은 기업들은 이제라도 원고 등과 같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때 양국 시민 과 정부 사이의 응어리진 감정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거라 본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각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 를 인용하고, 각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 다. 재판장 판사이종광 판사류봉근 - 37 - 판사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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