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64나1743서울고등법원 2심1965-10-02 선고검수완료

원고가 피고들에게 부동산 인도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함

상소인: 쌍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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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요약

서울고등법원 64나1743 민사 사건(1965년 10월 2일 선고, 2심)의 판결 결과는 원고 승소이다.

원문: 국가법령정보센터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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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개요

무슨 일이 있었나

  • 원고는 피고 1에게 특정 토지 2필지(총 1,763평)를, 피고 2와 피고 3에게 다른 토지 1필지(2,060평)를 인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 해당 토지는 원래 국방부 소관의 국유재산이었으나, 1963년 7월 12일 소외인과의 토지교환계약을 통해 소외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습니다.
  • 이후 1964년 5월 12일 소외인과 원고 사이의 매매계약으로 원고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같은 달 14일 등기가 완료되었습니다.
  • 피고들은 해당 토지가 농지개혁법 시행 당시 농지였으므로 농지분배 대상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원고의 소유권 취득이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은 사실관계를 조사한 결과, 이 토지는 1944년 일본 육군이 비행장 건설을 위해 매수한 이후 계속 행정재산으로 관리되어 왔으며, 농지개혁법 시행 당시에도 국가의 의사는 농경지가 아닌 비행장 용지로 사용하려는 것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한눈에 보는 결론

원고는 피고들에게 부동산 인도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피고들은 원고의 소유권 취득이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원고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피고들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해당 토지가 농지개혁법의 적용을 받는 농지인지 여부였습니다.

법원은 왜 그렇게 판단했나

  • 법원은 농지개혁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농지는 소유자가 농경지로 사용할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도 농경이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 이 사건 토지는 농지개혁법 시행 당시 절차상·실질상 행정재산의 성질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비록 일시적으로 농사가 지어졌더라도 농지분배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 토지가 농지개혁법 시행 이후에 농지로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소급하여 농지분배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 원고의 소유권 이전 등기는 적법하게 이루어졌으며, 피고들이 내세운 다른 권원이 없으므로 피고들은 토지를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핵심 정리

이 사건은 농지개혁법에서 말하는 '농지'의 의미를 명확히 한 판결입니다. 단순히 실제로 농사가 지어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농지분배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의 사용 의사와 토지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행정재산으로 관리되던 토지는 일시적 경작 사실만으로 농지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민사 판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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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요지

판시사항
  1. 1

    농지개혁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농지의 요건

【원고, 피항소인】 원고 【피고, 항소인】 피고 1외 2인 【원심판결】 제1심 서울지방법원 수원지원(64가563 판결) 【주 문】 피고들의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원고는 원고에 대하여 피고 1은 수원시 (주소 1 생략) 답 382평 및 같은 곳 (주소 2 생략) 답 1,381평을 인도하고 피고 2, 피고 3은 같은 시 (주소 3 생략) 답 2,060평을 인도하라. 소송비용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라는 판결을 구하였다. 【이 유】 청구취지에 적혀 잇는 부동산이 원래 국방부 소관의 국유재산으로 있다가 1963.7.12 소외인과의 토지교환계약에 의하여 그 해 12.30. 그 사람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1964.5.12.자 위 소외인과 원고 사이의 매매를 원인으로 그해 5.14. 원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어 있는 사실 및 피고 1이 위 토지 가운데, (주소 1 생략) 답 382평과 같은 곳 (주소 2 생략) 답 1,381평을 점유하고 피고 2 및 피고 3이 (주소 3 생략) 답2,060평을 공동 점유하고 있는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위와 같이 원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어 있는 이상 위 토지는 일응 적법하게 원고의 소유에 돌아갔다고 추정될 것인데, 피고들은 위 추정에 반하여 이사건 토지는 원래 국유재산중의 잡종 재산이고 또 농지개혁법 실시 당시 농지이었으므로 오로지 농지분배의 대상이 될 뿐인데 농지분배가 아닌 토지교환계약에 의하여 소외인에게 양도한다는 것은 농지개혁법에 위배되는 무효의 처분으로서 이로 인하여서는 원고가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다. 살피건대, 각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2,5,6,11,13,14,15호증, 같은 7호증의 1 내지 3, 같은 8호증의 1,2, 을 제1 내지 4호증의 각 1 내지 3, 같은 5,6호증의 각 1 내지 5, 같은 8호증의 각 내용 일부에 당사자의 변론의 모든 취지를 보태어 보면 이사건 토지는 원래 농지로 있던 것을 1944년경 당시 일본 육군성에서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하여 매수한 토지의 일부인데, 그 비행장 공사로서 주활주로가 준공되고 보조활주로 건설을 위한 매립공사가 진행도중 8.15해방을 맞게되어 위 비행장 건설공사가 중단되고 해방 후에는 자연히 일반 사람들이 들어가서 경작을 하게 되었으며 미군정시대에 소위 적산농지로 취급되어 1946년부터 1948년까지는 신한공사, 중앙토지행정처를 거쳐 정부수립 후의 귀속농지관리국에서 관리하여 오다가 1949년에 우리나라 공군당국에서 위 비행장 시설과 같이 이사건 토지를 인수 관리하게 된 사실, 그러다가 1950년에 6.25사변이 일어나서 1951년에 수복이 되자 이 비행장 시설을 미국공군이 인수 관리하다가 다시 1953년에는 우리나라 공군이 인수하여 계속 관리하던중 1963.7.6. 국유재산법 제20조, 제28조,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 3호에 의하여 용도폐지가 되어 그해 7.12 소외인과의 교환계약에 의하여 그 사람에게 소유권이전등기가 된 사실, 그런데 이사건 토지를 비롯하여 위 비행장 시설에 직접 제공되지 않는 부분은 1949년도에 한국 공군이 인수한 후에도 공군 당국과의 임대차계약에 의하여 일반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고 1951년과 1952년 미국 공군에서 관리하던 동안은 주위에 철조망을 쳐서 농사를 짓지 못하다가 1953년도에 한국 공군에 인수한 후에는 다시 위와 같은 임대차계약을 맺고 철조망 내부에 들어오기 위한 출입증을 받아서 농사를 짓고 있었으나 그 계약은 1년을 기한으로 하여 다년성 식물재배를 금지하였고 1년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계약을 맺기로 한 사실, 이사건 교환계약이 맺어지게 된 경위는 원래 일본 육군성에서 건설하려던 비행장은 주활주가 현재의 활주로보다 짧았는데, 미국 공군에서 위 비행장을 인수한 후에 이 활주로를 더욱 연장하게 되어 이 활주로 연장부분에 있는 일반 민유지를 정부에서 징발하고 그대신 이사건 토지가 위치한 부분은 원래 일본 비행장 때의 보조활주로 및 비행기 은익장소에 이르는 도로 또는 고사포를 설치한 장소로서 1951년과 1952년은 미국 공군이 그대로 비행장 용지로 철조망을 둘러 확보하여 두었으나 1953년도에 한국 공군에서 인수한 후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출입증에 의하여 농사를 짓고 다시 1955년경부터는 직접 비행장 용지에 필요성이 희박하게 되어 철조망을 철거하여 경작을 시켜 왔는데, 1963년경 비행장 기지 안에 있는 징발된 민유지와 철조망 바깥에 있는 이사건 토지등 불필요한 군용지를 서로 교환하기로 하여 원래 징발된 민유지인 수원시 장지동 336 전 1,810평 등의 소유자인 소외인과 사이에 이사건 교환계약이 맺어졌다는 시실등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을 제8호증의 내용 가운데 한국 공군이 이사건 토지를 처음에 관리하게 된 것이 6.25사변 이후이라는 증언부분은 믿지 않고 다른 반대되는 증거는 없다. 위 사실에 농지개혁법 시행령 제10조 제1, 2항에 의한 인계 또는 보고가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을 보태어 보면 이사건 토지는 1944년경에 국유재산중의 행정재산으로 매수되어 1963.7.6. 용도폐지가 될 때까지 절차상으로 행정재산의 성질을 잃은 사실이 없고 또 한편 1955년에 한국 공군에서 이사건 토지를 비행장의 용지로 확보할려는 국가의 의사가 있었다고 할 수 있으니 실질적으로도 그 당시까지는 아직 행정재산의 성질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농지개혁법시행 당시 농지소유자의 주관적인 목적이 농경지로서만 사용할 의사가 있어야하고 객관적으로 당해 토지가 소유자의 주관적인 농경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상태하에 있는 토지를 말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농경에 제공되어 있어도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이를 농지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해석할 것인데, 이사건 토지는 위에서 본 바와같이 농지개혁법시행 당시 절차상으로나 실질상으로나 아직도 행정재산으로서의 성질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비록 당시 임대차계약에 의하여 현실적으로는 농지로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일시적인 이용상태에 지나지 않고 소유자인 국가의 의사가 이를 농경지로서만 사용할 의사가 있었다고 할 수 없는 이상 이를 지목하여 농지분배의 대상이 되는 농지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설사 농지개혁법시행 이후에 이사건 토지가 실질적으로 공용 또는 공공용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소급하여 농지분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니 이사건 토지가 농지개혁법시행 당시 농지분배의 대상이 되는 토지였다는 전제로 원고의 소유권 취득을 부인하는 피고의 진술은 이유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렇다면 이사건 토지에 대한 원고의 소유권 취득은 다른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한 적법하다고 할 것이므로(이사건 토지와 같이 농지개혁법시행 이후에 농지로 확정된 토지에 대하여도 농지개혁법 제19조 제2항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1호증의 1,2,3에 의하여 등기로서 그러한 절차가 적법하게 갖추어졌다고 추정될 뿐 아니라 역시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9호증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 것이니 이 점에서도 원고의 소유권 취득이 방해되지 않는다) 피고들은 이사건 토지를 소유자인 원고에게 대항하여 계속 점유할 다른 권원을 내세우지 못하는 한 각각 이를 원고에게 인도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원판결의 결론을 유지하기로 하고 피고들의 항소를 기각하기로 하며 항소비용은 패소자인 피고들에게 부담시키기로 항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윤행(재판장) 김기홍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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