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페이지는 공개된 판결문을 LLM(생성형 AI)으로 정형화한 데이터입니다. 원문과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구체적 사건은 자격 있는 변호사와 상담하세요. 본 사이트의 통계·라벨은 가치 판단이 아닌 단순 경향 지표입니다.
01
사건 개요
무슨 일이 있었나
1961년 3월 무렵, 정부가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데모규제법을 국회에 제출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가 여러 곳에서 열렸습니다.
피고인A와 피고인B는 1961년 4월 2일 OO지역에서 열린 반대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당시 시위대 약 100명은 집회 장소로 행진하다가 경찰 저지선과 마주쳤고,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A가 경찰관을 때리고 발로 찼으며, 피고인B가 경찰 간부에게 죽이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위대의 폭행·협박·손괴로 소요가 일어나고 경찰의 공무집행도 방해됐다는 혐의였습니다.
두 사람은 과거 재판에서 각각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재심 절차가 열려 법원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심리했습니다.
한눈에 보는 결론
피고인A와 피고인B는 시위 과정에서 소요와 특수공무집행방해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재심에서 핵심은 시위가 공공의 평화와 안전을 해칠 만큼 폭력적이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경찰을 상대로 한 범죄에 함께 가담했는지를 입증할 증거가 있는지였습니다. 법원은 혐의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아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왜 그렇게 판단했나
당시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법원은 과거사 조사 결과와 판결문 사본 등 현재 확보할 수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 판단했습니다.
두 사람은 법이 정한 최장 구속기간보다 145일 더 구금된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구금이 부당하게 길어진 상황에서 나온 법정 자백은 자발적으로 한 말이라고 보기 어려워 증거로 믿기 힘들다고 봤습니다.
시위는 약 100명의 참가자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한 것이고, 경찰과의 충돌도 저지선을 통과하려는 과정의 몸싸움 정도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시위대가 도구를 사용해 경찰선을 공격했다는 증거도 없었습니다.
이 정도의 행위가 한 지역의 공공질서와 안전을 해칠 정도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를 뒷받침할 다른 증거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피고인A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찰관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했는지 드러나지 않았고, 두 사람이 폭력행위를 미리 알고 함께 실행하기로 했다는 점도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핵심 정리
재심 법원은 기록이 사라진 상황에서 남아 있는 자료를 다시 살펴, 자백의 신빙성과 시위의 실제 양상, 각 피고인의 구체적인 가담 여부를 따졌습니다. 시위가 소요죄에 해당할 만큼 위험했다거나 두 사람이 경찰을 상대로 한 폭력행위에 함께 가담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광고 자리
Leaderboard 728×90
02
비슷한 다른 판례
사실관계·죄명·심급·BAC 등 변수로 매기는 유사도
유사도 ≥50%
· 사실관계 85% 이상 + 형량이 유의미하게 다른 사건. 가벼운 사건이 먼저.
유사 사건 분석 중...
03
양형 인자
이 사건 판결문에서 가중·감경 사유가 별도로 명시·추출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판결은 양형 인자를 본문 안에 풀어 적기만 하고 따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 가중 사유0건
기록된 사유 없음
↓ 감경 사유0건
기록된 사유 없음
- 1 -
대 구 지 방 법 원
제12형사부
판 결
사 건2025재고합5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위반
피 고 인1. A (41-1), 무직
2. B (39-1), 무직
재 심 청 구 인피고인 A, B
검 사심성택(기소), 조승우(공판)
변 호 인법무법인 삼일
담당변호사 ****(피고인 모두를 위하여)
재심대상판결****지방법원 1962. 2. 24. 선고 61형공합192 및 62형공합7(병합)
판결 중 피고인들에 대한 부분
판 결 선 고2026. 7. 10.
주 문
피고인들은 각 무죄.
이 유
1.공소사실의 요지
- 2 -
피고인 A은 **** 2학년을 중퇴한 자로서 신문배달원으로, 피고인 B은 다방종
업원으로 종사하던 자이다.
김○○ 등은 1961. 3.경 정부에서 기초하여 국회에 제출하려던 국가보안법 개정법
및 데모규제법의 2법안은 반공이라는 미명하에 야당 특히 혁신계 정당의 정치적 활동
을 봉쇄하려는 의도가 보일 뿐 아니라 장차 그 방면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는 법률이라
속단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 통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 하에 동 양대 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민대회를 개최할 것을 기도하고, 1961. 3. 31. 및 동년 4. 1. 양차에 걸
쳐 **** **** 소재 **** 내에서 이른바 2대 악법반대 경북정당 사회단체 노
동단체 학생단체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전시 시민대회의 일시 장소는 동년 4. 2.
17시부터 ****에서 거행하기로 하고, 식순 및 동원 인원수 등을 결의한 후
동 대회의 집회 및 시위계를 행정관청에 제출하였던바 당국으로부터 당시 빈발하는 무
질서한 난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동 대회의 장소로서 **** ****은 좋으
나 역전광장의 사용은 불허한다는 이유로 전시집회 및 시위계가 반려되었고 동 역전광
장의 사용을 강행할 때에는 공안유지상 철저히 이를 단속하겠다는 취지의 통고를 받
자, 동인 등은 경찰관의 충돌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동 집회와 시위를 역전광장에서 하
기로 하고 대회참가군중은 일단 **** **** 소재 **** 사무실 앞의 소개지에
집합하여 역전광장으로 항하여 전진하기로 모의하고 그 취지를 상기 각 단체에 연락하
여 동년 4. 2. 예정대로 전시 소개지에 약 100여명의 시위군중이 집합하여 드디어 동
일 16시 30분경 역전 광장으로 향하여 동 지점을 출발하게 되었던바,
박지○는 동일시경 동 데모대에 가담하여 김○○ 등과 같이 동 시위 군중을 선동하
며 시위대의 선정용 지프차를 앞세우고 다중의 위력으로서 역전광장으로 향하여 전진
- 3 -
하면서 “2대 악법은 살인법이다. 죽음으로서 막아내자”, “장정권 물러가라” 등의 구호
를 외치는 데모군중의 선두에 서서 전진 중 동 데모대의 전진을 저지하려고 ****입구
에 배치된 경찰관과 동 지점에서 충돌하자 박지○는 전시 지프차 위에 올라서서 경찰
을 질책하고 경찰관과 서로 붙잡고 옥신간신하며 데모대원과 합세하여 폭력으로써 전
시 경찰의 저지선을 동일 17시경에 돌파하고 계속 동 시위 행렬이 역전광장을 향하여
전진 중에 피고인들과 이동○, 박상○, 권오○ 등은 이에 가담하여 다시 합세한 수백
명의 시위군중과 같이 계속 역전광장으로 향하여 중앙 통을 전진 중 이를 저지하려고
북성로 입구에 배치된 약 200명의 경찰과 동 지점에서 서로 대치하였던바, 피고인들과
이동○, 박상○, 권오○ 등은 각 선두에 서서 일거에 동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려고
“반공이란 미명하에 다시는 안 속는다.”라고 쓴 플랜카드를 펴 들고 “악질경찰 물러가
라”, “마산사건을 아느냐”, “너희들도 자동케이스 15년 감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시
위군중과 합세하고, 피고인 B은 마이크를 통하여 수삼차 질서회복을 호소하며 동 데모
대의 즉시 해산을 요구하는 경북경찰국 경비과장 이○○에게 “저 새끼 잡아 죽인다”고
협박을 가하고, 권오○은 경비경관의 경찰봉을 빼앗으려고 서로 붙잡고 옥신각신하여
동 경찰봉을 부러지게 하여 이를 손괴하고, 피고인 A, 하정○ 등은 경찰관을 주먹으로
구타하고 발로 차는 등 폭행을 자행하여서 피고인들과 이동○ 등은 동 지역 일대의 정
밀을 해하여 소요하고, 다중의 위력으로 경찰관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였다.
2. 판단
가. 이 사건 판단의 자료 및 방법
1) 재심개시결정이 확정된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그 심급에 따라 다시 심판을 하
여야 하는데(형사소송법 제438조 제1항), 다시 심판한다는 것의 의미는 재심대상판결의
- 4 -
당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자체를 처음부터 새로 심판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당연히 재심대상판결의 기초가 된 증거와 그 이후에 수집된 증거를 모두 종합하여 판
단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국가기록원, ****지방검찰청 등 어느 국가기관에도 이 사
건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이 보존되어 있지 아니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 법원이 재심대
상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 그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을 검토할 수는 없다.
2) 한편, 재심대상 사건의 기록이 보존기간의 만료로 이미 폐기되었다 하더라도
가능한 노력을 다하여 그 기록을 복구하여야 하고, 부득이 기록의 완전한 복구가 불가
능한 경우에는 판결서 등 수집한 잔존자료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원판결의 증거들과 재
심공판절차에서 새롭게 제출된 증거들의 증거가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재심대상판
결의 당부를 새로이 판단하여야 하는데(대법원 2004. 9. 24. 선고 2004도2154 판결 참
조), 이 사건과 같이 기록이 보존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지금 단계에서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자료를 기초로 하여 재심청구의 당부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3) 따라서 현재 수집할 수 있는 최량의 증거로서 피고인들이 제출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및 이 사건 재심대상 사건의 판결문 사본 등을 종
합적으로 검토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판단하기로 한다.
나. 구체적 판단
1) 소요의 점에 대하여
가)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포함한 이 사건 기록에 따르면, 피고인들은
1961. 4. 2. 구속되어 1961. 4. 26. ****지방법원에 소요죄 등으로 기소된 후 1962. 2.
24. 피고인 A은 징역 1년 6개월 및 집행유예 3년(미결구금일수 325일 산입), 피고인 B
- 5 -
은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3년(미결구금일수 325일 산입)을 각 선고받은 사실이 인정된
다.
피고인들이 구속될 당시의 구 헌법(1962. 12. 26. 헌법 제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9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
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 단, 범죄의 현행범인의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수사기
관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후에 영장의 교부를 청구할 수 있다. 누구든지 체
포, 구금을 받은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그 당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보장된다.”고 규정하여,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었다. 또한
피고인들의 구속 당시 시행 중이던 구 형사소송법(1961. 9. 1. 법률 제705호로 개정된
것, 이하 같다) 제92조는 구속기간은 2개월로 하고 특히 계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심급마다 2개월씩 2차에 한하여 결정으로 갱신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한편, 공소제기
전의 체포‧구인‧구금된 기간도 위 기간에 산입하였다.
즉 피고인들에 대하여 1심에서 최대로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은 6개월이었고, 적
법절차의 원칙 및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법원에 기소되었다가 혁명재판소에 기소간주 된 사건
1)
이 다시 법원으로 이송된 경
우에도 그 구속기간에 관해서는 여전히 구 형사소송법상 1심의 구속기간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본 것처럼 피고인들이 1961. 4. 2. 체포된 날로
1) 피고인들이 1961. 4. 26. ****지방법원에 소요죄 등으로 기소된 후 1961. 8. 12.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위반
죄로 공소장이 변경되었고, 1961. 8. 25. 구 혁명재판소법 부칙(법률 제630호) 제3항에 의하여 특수범죄처벌에관
한특별법위반죄로 혁명재판소에 기소간주되었으며, 1961. 10. 5. 사건이 다시 ****지방법원으로 이송되었다.
2)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4조 내지 제7조의 죄 등을 범한 자에 대하여는 법관의 영장 없이 구속, 압수,
수색할 수 있다고 규정한 구 인신구속 등에 관한 임시특례법 제2조 제1항은 수사기관이 법관에 의하여 발부된
영장 없이 일부 범죄 혐의자에 대하여 구속 등 강제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영장 없이 이루어진 강제처분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내에 법관에 의한 사후영장을 발부받도록 하는 규정도 마
- 6 -
부터 6개월 이상 경과한 1962. 2. 24. 제1심 판결이 선고되었으므로, 구 형사소송법이
정한 6개월 보다 145일을 초과하여 피고인들을 구금한 것은 불법구금에 해당한다. 위
와 같이 피고인들에 대한 부당한 신체구속이 장기화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피고인들의
각 법정 자백 진술은 그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3)
나) 나아가 소요의 점과 관련하여 형법 제115조의 소요죄는 다중이 집합하여 폭
행·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로서, 소요죄의 구성요건적 행위
로서의 폭행, 협박, 손괴는 한 지방에 있어서의 공공의 평화, 평온, 안전을 해할 수 있
는 정도의 것이어야 하는데, 이 법원에 새롭게 제출된 자료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
와 같은 이 사건 시위의 목적과 배경, 시위대의 인원과 경찰병력의 인원, 이 사건 시위
의 방법, 이 사건 시위의 경과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들을 포함한 시위대가 행한
폭행, 협박, 손괴 등이 한 지방에 있어서의 공공의 평화, 평온, 안전을 해할 수 있는 정
도의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① 이승만 자유당정권이 붕괴된 후 개헌을 통하여 새롭게 집권하게 된 장면의
민주당 정권은 국민들의 민주화와 민생에 대한 요구가 집회와 시위를 통하여 연일 계
속되자 이를 통제하기 위하여 1961. 3. 초순경부터 2대 법안의 제정을 시도하였다. 이
련하지 아니함으로써, 수사기관이 법관에 의한 구체적 판단을 전혀 거치지 않고서도 임의로 불특정한 기간 동안
피의자에 대한 구속 등 강제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바, 이는 위 법률조항의 입법목적과 그에 따른 입법
자의 정책적 선택이 자의적이었는지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형식적으로 영장주의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헌법재판소 2012. 12. 27. 선고 2011헌가5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이 기소되었다가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위반 공소사실로 공소장변경이 이루어져 혁명재판소로
기소 간주된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3) 임의성 없는 진술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취지는, 허위진술을 유발 또는 강요할 위험성이 있는 상태 하에서 행
하여진 진술은 그 자체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오판을 일으킬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진위를
떠나서 진술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압박이 가하여지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임의성에 다툼이 있을 때에는 그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피고인이 증명할 것이 아니
고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해야 하고,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진술증거는 증거능력이 부정된다. 나아가 피고인이 경찰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인하여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고 그 후 검찰이나 법정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어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했다면
각 자백도 임의성 없는 자백이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2도9879 판결 등 참조).
- 7 -
와 같은 시도가 알려지자 민족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중앙 일간
지 등은 각 논설을 통하여 민주당이 제안한 2대 법안은 반공을 빙자하여 국민의 기본
적 인권을 탄압할 저의가 있다며 위 2대 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사회당, 사회
대중당 등 혁신계 정당과 피학살자유족회 민주민족청년동맹, 학생단체 등 사회단체들
은 ‘2대 악법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공동으로 결성하여 정부가 발의한 2대 법안 반
대투쟁에 돌입하였다. 김병로 전 대법원장도 ‘현행 형법과 국가보안법으로도 모든 것을
다스리는 데 충분하다’고 반대의사를 표명하였고, 서울과 지방에서 개최되었던 2대 법
안 반대운동에는 연일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였으며, 대학생들은 ‘2대 법안 반대
학생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독자적으로 반대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사건 시위는 위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 사건 시위가 있었던 **** 지역
의 시민들도 대부분 앞서 본 바와 같은 언론보도 등을 통하여 이 사건 시위의 목적,
배경 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심지어 민주당의 일부 국회의원과 보
수계에서도 위 2대 법안을 반대하기에 이르러 결국 장면정부는 위 2대 법안을 철회함
으로써 위 2대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된 점에 비추어 보면, 당시 여론
의 향방은 위 2대 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② 이 사건은 100여 명의 시위대가 **** **** 소재 **** 사무실 앞
에서 집합하여 대회장소인 역전광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이를 저지하려는 200여 명의
경찰병력과 충돌하여 발생한 것이고, 그 밖의 시위 군중들은 시위대의 주장에 동조하
여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다.
③ 이 사건 시위는 시위대가 **** **** 소재 **** 사무실 앞에서 집
합하여 대회장소인 역전광장으로 행진하면서 구호를 외치는 정도의 평화적인 방법으로
- 8 -
이루어졌다. 경찰이 대회장소인 역전광장으로 이동하려는 시위대를 저지함으로써 시위
대와 경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대회
장소인 역전광장으로 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 사이의 몸싸움 정도에 불
과하였고, 시위대가 도구 등을 이용하여 경찰 저지선을 돌파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2
대 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당시 정부의 태도와는 반대되는 입장이나 이 정도의 공적인
비판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되는 범위 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④ 이 사건 시위대의 행진은 경찰봉 등을 갖춘 진압경찰에 가로막혀 결국 해산
하였고, 당초 계획한 역전광장에서의 집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2) 특수공무집행방해의 점에 대하여
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는 주관적 요건으로서 공동가공의 의사와
객관적 요건으로서 공동의사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의 실행 사실이 필요
한데, 주관적 요건으로서의 공동가공의 의사는 타인의 범행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저지
하지 아니하고 용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공동의 의사로 특정한 범죄행위를 하기
위하여 일체가 되어 서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이용하여 자기의 의사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2008. 1. 17. 선고 2007도7528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에 새롭게 제출된 자료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
하여 보면, 피고인들이 단순한 시위를 넘어 이 사건과 같은 폭력행위가 발생할 것을
미리 예견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들이 직접 폭력행위에 가담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없다.
가) 피고인 A
① 이 사건 공소사실 자체(“피고인 A, 하정○ 등은 경찰관을 주먹으로 구타하
- 9 -
고 발로 차는 등 폭행을 자행”)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어떤 경찰관을 상대로 어떠한
폭력행위에 어떻게 가담하였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행위 내용이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
고, 피고인이 이 사건 시위를 결의한 **** **** 소재 **** 내 집회에 참석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② 재심대상 사건이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열거하고 있는 구체적 증거
로는 ‘판시 데모대 속에서 대나무를 손에 들고 있었다’는 취지의 피고인의 법정 자백
진술과 ‘피고인이 데모대에 가담하여 구호를 부르고 고함을 외치며 경찰관 김○○의
어깨를 주먹으로 구타하였다’는 취지의 증인 차○○, 김○○(당시 시위를 진압하려던
경찰관으로 추정됨)의 각 증언이 있다.
그러나 피고인의 자백 진술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하
기 어렵고, 그러한 진술은 피고인이 이 사건 시위에 참가하였다는 사실 외에 피고인이
이 사건 시위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경찰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행위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예견하였다거나, 그러한 사실을 알고서 이를 이용하여 이 사건 특
수공무집행방해 범행에 가공할 의사가 있었다는 점까지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사건 시위에는 약 2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수많은 시
위군중 속에서 어떤 시위참가자가 어떠한 행위를 하였는지 명확하게 특정하기 어려웠
을 것으로 보이는 점, 위 공소사실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폭행을 자행한 피해 경찰관
이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위 증인들이 상대방에 대한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배
제할 수 없는 점 등을 아울러 고려하면, 위 증인들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③ 그 밖에 당시 사진들은 현재 기록이 폐기되어 그 영상 내용을 알 수 없다
(그 영상이 이 사건 시위대의 전체적인 시위양상 등을 넘어 피고인의 구체적인 행위를
- 10 -
촬영한 것은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나) 피고인 B
① 피고인은 이 사건 시위 도중 마이크를 통하여 경비과장 이○○에게 “저 새
끼 잡아 죽인다”라고 협박을 가함으로써 이 사건 특수공무집행방해 범행에 가담하였다
는 취지로 공소가 제기되었다.
② 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증거로는 ‘판시 일시 및 장소에 있었다’, ‘판시
데모에 가담하였다’는 취지의 피고인의 수사기관 및 법정 자백 진술과 「피고인이 데
모대의 선두에 서서 경비과장에게 “저새끼 잡아죽인다”라고 협박을 가하며 경찰관 박
○○에게 폭행을 가하였다」는 취지의 증인 이○○, 박○○, 나○○의 각 법정진술 및
사진이 있으나, 피고인의 자백 진술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하
기 어렵고, 그러한 진술이 피고인이 이 사건 시위에 참가하였다는 사실 외에, 이 사건
시위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경찰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행위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예견하였다거나, 그러한 사실을 알고서 이를 이용하여 이 사건 특수공무집
행방해 범행에 가공할 의사가 있었다는 점까지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③ 또한 위와 같은 증인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공소사실에는 ‘피고인
이 경찰관 박○○에게 폭행을 가하였다’는 행위에 대한 기재가 전혀 없는 점, 수많은
시위군중 속에서 어떤 시위참가자가 어떠한 행위를 하였는지 명확하게 특정하여 어려
웠을 것으로 보이고, 위 증인들이 상대방에 대한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아울러 고려하면, 위 증인들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려우며, 나아가 당
시 사진들은 현재 기록이 폐기되어 그 영상 내용을 알 수 없다(그 영상이 이 사건 시
위대의 전체적인 시위양상 등을 넘어 피고인의 구체적인 행위를 촬영한 것은 아닐 것
- 11 -
으로 추측된다).
④ 설령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공무집행
방해죄는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
고, 그 폭행 또는 협박은 성질상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한 것으로서 그 공무원
의 직무집행을 방해할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할 것인데(대법원 2007. 3. 16. 선고 2006
도9020 판결 등 참조), 진압봉 등으로 무장한 천 명 이상의 경찰관들이 시위 군중을
제압하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경찰관을 향해 “저 새끼 잡아 죽인다”라고 외친 것이 단
순한 감정적 욕설 내지 일시적 분노의 표시를 넘어 위 경찰관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
으키게 하거나 그 직무집행을 방해할만한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
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기로 하
고,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판사정한근_________________________
판사김주형_________________________
판사이하은_________________________
- 12 -
광고 자리
Half Page 300×600
이 판결, 합리적인가요?
아직 투표가 없어요.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공유하기
요약 한 줄 + 페이지 링크 + 사이트 이름이 클립보드에 들어가요. 카톡·메시지에 그대로 붙여넣기.
해석·평가재판부는 당시 수사·재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제한된 자료로 판단했지만, 불법 구금과 법정 자백의 임의성 문제를 지적하며 원판결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시위 과정의 물리적 충돌을 공공 평화를 해칠 수준의 소요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하고, 2대 법안 반대가 헌법상 표현의 자유로 보호된다고 해석했다.
해석·평가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속하고 반국가단체 활동을 고무·동조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며, 당시 정부 입장과 반대되더라도 정당한 권리 행사였음을 인정했다. 유족은 50년 만의 명예 회복에 기쁨을 표하면서도 생전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해석·평가이종섭씨는 53년 만의 무죄 판결에 대해 '사필귀정'이라며 잘못된 사법 판결로 국민 세금으로 보상받는 것에 가슴 아파했다. 그는 2대 법안이 반공을 미명으로 혁신계 정당 활동을 봉쇄하려는 악법이었고, 당시 언론과 시민사회가 반대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재판부가 폭력·협박 증거가 없다고 본 점을 무죄 이유로 들었으며, 자신의 정치적 삶에 대해 후회 없이 '비단길'이었다고 회고했다.
해석·평가재판부는 과거 혁명재판소가 이미 무죄로 판단한 사안을 다시 유죄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며, 당시 사회당의 활동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보장 범위 내에 있어 반국가단체 동조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이는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 탄압이 부당했음을 사법적으로 확인한 의미로 평가된다.
이 판결, 합리적인가요?
아직 투표가 없어요.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07
댓글
댓글을 남기려면 소셜 계정으로 로그인하세요
댓글 불러오는 중...
광고 자리
Medium Rectangle 300×250
공유하기
요약 한 줄 + 페이지 링크 + 사이트 이름이 클립보드에 들어가요. 카톡·메시지에 그대로 붙여넣기.
댓글
댓글을 남기려면 소셜 계정으로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