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10년 법정 공방 끝에 무죄…국민연금 손배소는 진행 중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 무죄 확정 후 국민연금 손배소 진행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핵심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삼성물산은 건설, 상사, 패션, 리조트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고, 제일모직은 패션과 바이오 사업에 강점을 가진 회사였다.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결정되었는데, 이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책정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이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합병을 추진하면서 자본시장법을 위반하고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고 판단해 2020년 9월 기소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합병 과정에서 주식 매수가격의 적정성이었다. 일성신약 등 소액주주들은 합병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고, 법원에 매수가격 결정을 청구했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2016년 5월 30일 2016라20189 사건에서 원고(주주)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식의 적정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 매수가격을 인정하지 않고, 주주들이 청구한 1주당 66,602원의 가격을 결정해 달라는 항고를 받아들였다. 이는 합병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재산권 보호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판결로, 이후 유사 사건의 기준이 됐다.
형량 측면에서 이 사건은 형사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1심(2024년 2월)과 2심(2025년 2월)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은 2025년 7월 17일 상고를 기각하며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합병 과정에서 불법적인 청탁이나 주가 조작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특검 측이 주장한 '승마 지원 관련 청탁'이 합병의 근거라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
판결 이후에도 이 사건은 여러 경로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국민연금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국민연금은 2024년 9월 삼성물산과 이재용 회장,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차장 등 9명을 상대로 5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26년 3월 19일 첫 변론이 열렸고, 6월 4일 두 번째 변론이 진행되었다. 재판부는 국민연금 측에 '누가 어떤 불법행위로 어떤 손해를 발생시켰는지'를 명확히 정리하라고 요구하며 청구 원인의 구체화를 주문했다. 이 소송은 합병으로 인한 손해액이 1387억 원에 달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국민연금에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했다는 점도 쟁점이 되고 있다.
또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미 FTA를 근거로 제기한 ISDS(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에서 한국 정부가 2026년 2월 승소했다. 엘리엇은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했는데도 국민연금이 찬성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중재판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한국 재계와 법조계에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첫째,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의 합병 비율 산정 방식에 대한 논란을 촉발했다. 대법원은 합병 직전 주가가 적정 가치를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며, 주가 중심 합병가액 산정 방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둘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고려 의무화 논의가 활발해졌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국민연금에 ESG 고려 의무화와 적용 자산군 확대를 촉구했다. 셋째, 이 사건은 10년에 걸친 장기 재판 끝에 무죄가 확정되면서, 검찰의 기소권 남용과 증거 수집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본 글은 공개 판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리한 일반 해설이며,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 사건은 자격 있는 변호사와 상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