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로펌 쓰면 형이 줄까 - 데이터가 주는 뜻밖의 답
대형로펌이 변호한 사건은 오히려 형이 더 무거웠다. 그런데 그 숫자를 곧이곧대로 읽으면 정반대로 속는다.

"돈을 더 들여 큰 로펌을 쓰면 형을 줄일 수 있을까." 형사 사건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리는 질문이다. 수임료가 몇 배씩 차이 나는 만큼, 그 돈이 실제로 형량으로 돌아오는지는 절박한 관심사다. 양형인사이트에 쌓인 형사 변호 사건 수천 건을, 이름이 알려진 대형로펌이 맡은 사건과 그 외(개인 변호사·중소 사무소)가 맡은 사건으로 나눠 결과를 비교해봤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통념과 정반대의 숫자였다. 대형로펌이 변호한 사건의 중앙 선고형량은 24개월로, 그 외(18개월)보다 오히려 6개월 더 무거웠다. 같은 죄명 안에서의 형량 위치를 나타내는 지표로 봐도 대형로펌 사건이 59, 그 외가 54로 더 높은 쪽에 있었다. 숫자만 떼어 읽으면 "비싼 로펌을 썼더니 형이 더 무겁네"라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 숫자를 "대형로펌이 형을 더 받게 만든다"로 읽는 순간 완전히 틀린다. 비밀은 형량이 아니라, 대형로펌이 어떤 사건을 맡느냐에 있다.
거액이 오간 사건,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 끝까지 다투기로 작정한 사건일수록 사람들은 대형로펌의 문을 두드린다. 실제로 대형로펌이 맡은 사건의 약 4분의 3이 1심에서 끝나지 않고 항소심·상고심까지 올라간 사건이었다. 그 외 사건의 항소심 비중보다 뚜렷이 높다. 한마디로, 애초에 더 무겁고 복잡하고 다툼이 큰 사건들이 대형로펌 쪽에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평균 형량이 높게 나오는 것은 로펌이 못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무거운 사건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이런 착시는 다른 분야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대학병원의 수술 사망률이 동네 의원보다 높게 잡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장 위중한 환자가 대학병원으로 몰리기 때문이지, 큰 병원이 수술을 못해서가 아니다. 가장 어려운 일을 맡는 쪽은 표면의 숫자에서 늘 손해를 본다.
진짜 실력은 같은 난이도 위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결과를 봤다. 무죄가 나거나 상급심에서 판결이 뒤집힌 비율은 대형로펌 16%, 그 외 17%로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더 어렵고 무거운 사건을 떠안고도 비슷한 비율로 결과를 끌어냈다는 뜻이니, 오히려 선전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적어도 "비싼 로펌은 돈값을 못 한다"는 반대편 통념 역시 이 데이터로는 뒷받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싼 로펌이 형을 줄여주는가"라는 처음의 질문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정직한 답은 "이런 식의 단순 비교로는 알 수 없다"이다. 로펌의 효과를 제대로 재려면 사건의 죄명, 피해 규모, 전과, 다툼의 정도까지 똑같이 맞춘 두 집단을 비교해야 하는데, 현실의 데이터는 그렇게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한 번은 대형로펌으로, 한 번은 개인 변호사로 동시에 진행해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특정 로펌을 추천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로펌을 고를 때 '평균 형량' 같은 표면 숫자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다. 정작 봐야 할 것은 그 변호인이 내 사건과 비슷한 유형을 얼마나 다뤄봤는지, 쟁점을 어떻게 잡는지다. 양형인사이트가 사건마다 '비슷한 판례'와 '양형 인자'를 함께 보여주는 이유도, 평균이 아니라 내 사건과 닮은 사례를 직접 비교해보라는 데 있다.
(이 분석은 형사 변호인 정보가 입력된 사건을 기준으로 했으며, 사건마다 쟁점과 사정이 달라 특정 로펌의 우열을 가리는 자료가 아니다. 표본 수와 사건 구성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다.)
※ 본 글은 공개 판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리한 일반 해설이며,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 사건은 자격 있는 변호사와 상담하세요.